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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콘텐츠 시장에서 아시아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류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주목받고 있다. 중국이 드라마 공급을 빠르게 확대하고 일본이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입지를 다지는 사이, 한국은 K팝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연결하는 소비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비서구 콘텐츠 경쟁 구도 속 한류의 포지셔닝'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러시아에서 한국 드라마는 주요 외국 드라마 가운데 유일하게 관심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드라마 관심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3의 흥행이 주요 동력으로 작용했다.
한국 드라마의 수용층도 확대되고 있다. 과거 핵심 시청층이 14~28세였다면 현재는 35세 이상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시청자의 14%는 자신을 한국 문화의 팬으로 인식하지 않으면서도 한국 드라마를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류 팬덤을 넘어 일반 시청층으로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러시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도 한국 콘텐츠의 입지는 상당하다. 보고서가 집계한 주요 플랫폼의 한국 드라마 제공 작품 수는 플랫폼별 합산 기준 1180개로, 중국 드라마 705개를 웃돌았다. 한국 영화 역시 569개 작품이 공급되고 있다.
다만 중국 콘텐츠의 성장세도 크게 두드러진다. 일례로 지난해 러시아 OTT 키온(Kion)에서는 중국 콘텐츠의 라이브러리 비중이 한국을 처음 추월했다. 중국 콘텐츠의 비중은 2024년 39%에서 올해 상반기 51%까지 확대됐다. 중국 드라마의 공급이 빠르게 늘면서 한국 콘텐츠가 확보했던 시장 내 입지를 위협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변화는 러시아 콘텐츠 시장의 구조적 재편과 맞물려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구 주요 미디어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고, 이후 현지 플랫폼들이 한국과 중국, 튀르키예 등 비서구권 콘텐츠 확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 러시아 외국영화 시장에서 아시아 영화의 매출·관객 비중은 2023년 10%에서 2024년 18%로 상승했다.
이처럼 아시아 콘텐츠 간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류의 차별화 요소로 꼽히는 것은 장르 간 연결성이다. 보고서는 한국 콘텐츠가 개별 작품의 인기를 다른 분야의 소비로 확장하는 밀도 높은 '문화 패키지'를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웹툰이 드라마로 제작되고, 드라마 OST를 통해 가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식이다. 여기에 팬 카페와 전문 상점, K팝 댄스학교, 문화 축제 등이 결합하면서 콘텐츠를 접한 소비자가 다른 장르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공연과 상품 시장에서도 이러한 소비 구조가 드러난다. 러시아 내 K팝 아티스트 공연은 2023년 3회에서 2024년 17회로 증가했으며, 2023년 현지 전자상거래 플랫폼 오존(Ozon)의 K팝 음반 판매량도 전년 대비 25.5배 늘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팬덤을 구축하고 있지만, 보고서는 한류처럼 다양한 콘텐츠 분야가 긴밀하게 연결된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애니메이션과 만화, OST를 중심으로 팬덤을 형성하고 있으며 중국은 드라마 공급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웹툰과 드라마, 음악, 공연, 상품 소비를 아우르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개별 작품의 흥행이 다른 콘텐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이를 다시 다양한 소비 활동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한류가 기존 팬덤을 넘어 새로운 소비층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향후 성장 가능성이 있는 수용층으로 35세 이상과 남성 시청층을 제시했다. 현재 한국 드라마는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강력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지만, 공포·스릴러·액션 등 장르 콘텐츠를 활용하면 소비층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으로 러시아 시장에서 한류의 성장 가능성은 기존 팬덤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갈수록 아시아 콘텐츠의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만큼 한국 역시 개별 작품의 흥행에 의존하기보다 장르별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다른 콘텐츠 소비로 확장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